[전남인터넷신문]조선 시대 나주는 최고의 부채 산지였음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 있다. 그 명성은 일제강점기 때도 이어져 왔으나 1930년대 이후 쇠퇴하고 현황과 그 배경이 당시의 신문 속에 나타나 있다.

동아일보 1931년 6월 3일자 지면에 ‘‘나주선자렴을 공동판매제실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는 전남 나주에는 부채(扇子), 발(簾) 등 견고 미려한 특산물이 있으나 현대적인 기계에 의한 산품이 아니요 수공품임으로 이익이 박하고 판로가 적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