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시장이 아닌 정치가 시장이 당선돼야
조은희(이하 조) : 문제를 풀려면 상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저는 국군 정보사령부 측에서 제일 긴급히 바라는 일이 뭔지를 물었습니다. 정보사에서는 부대를 하루라도 빨리 옮기는 게 우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부대이전 일정과 부지활용 계획이 서로 연동된 탓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라는 것이 정보사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셨나요?
조 : 저는 정보사가 부대를 빨리 옮기고 싶다는 내용의 공문을 국방부에 발송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당시의 정보사령부 사령관님께 조심스럽게 조언했습니다. 난마처럼 얽혀있던 문제의 실타래가 공문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그제야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국방부와의 협의 또한 긴요하다는 생각으로 국방부 차관님께 면담을 요청해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국방부는 부지를 최대한 비싸게 매각해야만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공 : 싼값에 민간에 매각하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게 빤하니 국방부도 중간에서 꽤 난처했겠네요.
조 : 저는 정보사 부지 매각 작업을 서리풀 터널 공사와 분리해 진행하자는 의견을 서초구청장으로서 개진했습니다. 당시가 19대 국회 때였는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강석훈 전 의원님이셨습니다. 강 전 의원님이 박근혜 정부에서 실세로 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또 다른 서초구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회선 전 의원님이었고요. 이 두 지역구 의원님께서 부대 이전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기재부에서도 정보사가 이전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지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비판을 사지 않고도 부대를 옮길 수 있는 상황이 되자 국방부도 제가 제안한 해법에 동의했습니다. 장기간 지지부진을 면하지 못하던 서리풀 터널 공사가 그렇게 해서 마침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서리풀 터널이 개통되자 국방부는 한결 더 이롭고 현명한 결정을 한 셈이 됐습니다. 터널이 뚫리면서 교통의 흐름이 크게 원활해지자 정보사 부지의 지가가 자연스럽게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국방부는 나라 땅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논란에 원천적으로 휘말리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서초구와 서울시, 국군 정보사령부와 국방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말로 귀결된 것이죠.
저는 곤란한 문제에 직면할수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내 구청장들은 업무상 필요성 때문에 다른 구들을 둘러볼 기회가 많습니다. 저는 서울 서남부 지역의 중대하고 핵심적인 현안인 경부선 철도 지하화 문제도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확신합니다. 기존에 지녀온 관념에만 매달려 있으면 지금부터 설령 백년이 지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공 : 서울시내를 통과하는 철로의 지하화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18년에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조 : 관건은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저는 서초구의 해묵은 현안이었던 서리풀 터널 개통 문제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시원하게 풀어냈습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구청장과 시장을 나누는 장벽이 없음을 강조하려고 애썼다.
기초자치단체장이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례는 이미 여럿입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전부 기초단체를 이끈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광역자치단체의 수장으로 도약한 경우입니다. 허태정 현 대전광역시장도 유성구청장을 역임했습니다.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은 격(Class)이 다르다는 인식이야말로 봉건적이고 퇴행적인 신분제적 사고에서 비롯된 매우 잘못된 편견입니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능력만 있으면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가 있습니다.
시장은 행정가인 동시에 정치가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정치가가 돼야지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정치인을 나쁘게 표현하면 정치꾼이 됩니다. 정치꾼은 자기편의 이익만을 위해 분열의 정치를 일삼습니다. 반면에 정치가는 국민 모두를 위해서 미래를 내다보며 정치를 하는 통합의 정치를 지향하고 실천합니다. 제가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저는 정치인 시장이 아닌 정치가 시장이 되겠습니다.
강남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한 서울 서남부 권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방안은 금번 연재 인터뷰의 후반부에 다뤄질 예정이다.
안철수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여당만 즐겁게 해
공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최근에 굉장히 자신만만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대통령에서 서울시장으로 궤도를 수정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거의 10년 만에 압도적 선두주자로 질주하고 있는 안 대표가 기분이 무척이나 업(Up)된 건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상황전개일 수가 있습니다. 구청장님께서는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을 통틀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2021년판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계신가요?
조 : 저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일등을 달리는 데에는 그분이 본인의 정치권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렸다고 국민들께서 생각하고 계신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일단은 대선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던지는 장면을 연출했으니까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신을 기꺼이 버리고 던지는 정치가를 늘 높게 평가해왔습니다.
공 : 많은 유권자들이 안 대표의 대선포기 결정을 희생과 헌신의 결단으로 여긴다는 의미인가요?
조 : 지금으로서는 그렇다고 봐야죠. 동기와 이유가 뭐였건 간에 결과적으로는 야권의 승리를 위해서 힘든 결단을 내린 셈이니까요. 하지만 정치인의 희생과 포기는 양날의 칼일 수가 있습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여론조사 선두 질주에 대해 토론 한 방이면 사라질 신기루와 같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공 : 안철수 대표가 토론 한번 삐끗해서 정말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네요. 그놈의 MB 아바타 때문에. (웃음)
조 : 일각에서는 ‘이태규 의원의 아바타’라는 말도 하더라고요. (웃음) 본질은 왜 안철수 대표의 지지율 선두 질주가 토론 한 방이면 사라질 신기루로 폄하되느냐에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대세론’을 일거에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 안철수 대세론이 안철수 대표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대세론과 기득권은 종이 한 장 차이이거든요.
공 :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조 : 안철수 대표가 대세론에 도취해 자기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태도를 보이는 순간 2012년 버전의 안철수 현상은 원래의 안철수 현상처럼 물거품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세론에 안주하고 도취하지 않는 일, 안철수 대표 앞에 제일 어려운 과제이자 가장 험난한 장애물입니다. 당은 달라도 저 역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그건 안철수 대표가 대세론에 도취하지도, 안주하지도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지율은 연기와 같습니다. 언제든지 한방에 훅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지혜로우신 분들입니다. 진심인지 잇속인지 옥석을 금방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건 시민들이 안 대표가 기득권을 단념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 대표가 작은 이해다툼에 계속 얽매인다면 서울시민들은 안철수에 대한 지지를 순식간에 철회할 게 확실합니다.
공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구청장님께서는 김진애 의원보다도 훨씬 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시네요. 굳이 토론까지 갈 것조차 없다는 생각하시는 분위기거든요.
조 : 저도 토론은 언제라도 자신 있어요. 그리고 안 대표는 다른 후보들과의 토론을 소심하게 피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 당(국민의힘) 안에서는 안철수 대표를 향해 국민의힘에 입당하라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본인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의 지지를 잃게 된다며 이러한 요구를 강경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안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은 우리 국민의힘에도, 안철수 대표에게도 전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민들께서 표 계산을 하며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광경을 보고서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주실까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항상 경계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초심을 잃는 사태입니다. 정치인의 초심이 무엇이겠어요? 국민이 먼저인 마음입니다. 시민이 먼저인 마음입니다. 유권자가 먼저인 마음입니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힘 입당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시민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정치인 위주의, 정당 본위의 정치공학적인 셈법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작년 봄의 21대 총선처럼 여당 심판의 장이 아닌 야당 심판의 장으로 엉뚱하게 변질될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⑤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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