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고등학교 시절 소위 말하는 날라리 껍데기인 후배를 알게 되었다. 별로 친할 계기도 없는 친구인데 우연한 계기로 후배가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직접 만든 열쇠고리를 선물하기도 하고 오가며 만나면 “언니! 언니!”하며 따라오곤 했다. 그 친구를 보면 노는 친구 같은데 크게 사고도 안치고 조금 다르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얘기하니 후배가 의미 삼장 한 말을 했다. “언니 나는 말이야. 사고 안쳐. 왜인 줄 알아? 엄마가 날 믿어주니까. 그 믿음이 너무 확고하니까 내가 그 믿음을 깰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좀 노는 거 같아도 난 사고 안쳐. 앞으로도 사고를 칠 일은 없을 거야!” 후배는 밝은 표정으로 엄마의 확고한 믿음이 자신을 붙들고 있다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들려주었다. 그렇다. 부모의 믿음은 아이를 붙드는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그 사랑과 믿음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참 행복한 아이일 것이다. 어쩌면 많은 아이들이 이 믿음에 배가 고파 다른 길들을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고 교육학을 전공하며 아이들이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다 보니 그 생각은 더욱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학생자원상담 봉사자 연수를 하며 경기도권의 아이들의 자해와 자살실태를 밀도 있게 듣게 되었다. 그 시간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불행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대면하게 되었다. 더욱 놀랬던 것은 예전에 비해 그 연령이 더 낮아져 초등 저학년 친구들에게도 이러한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 조그만 아이가 어떤 목표가 있어 공부에 그렇게 목을 매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야 할까? 어쩌면 자신은 감당이 안 되는 누군가의 목표를 짊어지느라 버거웠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