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젊은 나이에 미국 35대 대통령이 된 케네디(J. F. Kennedy)는 야심찬 정책을 펴나가고 있었다. 1960년 쿠바는 공산혁명을 주도한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집권하여 반미(反美) 정책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부패했던 정권에서 불의한 이익을 보던 소수의 사람은 대부분 미국으로 망명하여 정권 재탈환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冷戰)이 한참 고조되던 시대이었기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턱밑에서 반미 정책을 펴고 있는 카스트로가 눈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케네디 행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입안하였고, 이 법안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1961년 실행되었다. 압도적인 성공을 예상했던 이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소위 ‘피그만(灣) 침공사건’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재니스(Irving Janis)는 당시의 국무회의 의사록을 분석하여 계획을 심의하던 국무회의가 집단사고의 병폐(病弊)를 드러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집단사고를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조의 압력 때문에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면서, 피그만 침공사건 외에 미국의 외교정책 중에 집단사고로 파국적인 결과를 얻은 예로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의 월남전 확전(擴戰), 닉슨(Richard Nixon)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도청사건 등을 열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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