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비전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한국의 국회는 국민이 시대정신을 볼 때 계파나 따지는 지질한 공간으로 전락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만 36세의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의 차기 당대표가 되어선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펴는 논리는 대략 두 가지로 정리ㆍ집약된다.

첫 번째 논리는 유승민 득세론이다.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되면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가 이준석 뒤에서 상왕 노릇을 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제1야당을 좌지우지하고, 장기적으로는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을 주저앉히고 대통령 선거에 직접 나가리라는 아니면 말고의 부채도사식 판세 전망이다.

유승민-이준석 커넥션은 집에 잠자러 갈 때를 제외하면 여의도 국회의사당 반경 1킬로미터 이내 지역을 좀처럼 떠날 일이 없는 세칭 ‘여의도 사람들’에 의해 주로 제기되고 있다.

여의도 사람들은 한마디로 정치권에 줄을 대서 먹고사는 인간들을 가리킨다. 제도권이건 또는 비제도권이건, 특정 정당에 적을 두었건 혹은 두지 않았건 정치권에 선을 대고 밥벌이를 하는 인구의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0.1퍼센트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세계관은 평생 국회의사당 구경 한번 할까 말까한 남한의 대다수 일반대중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놀기 마련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보좌진 사이에 복도 하나 틈새가 가로놓여 있다면, 국회 보좌진과 평범한 인민 사이에는 지구에서 화성 사이의 천문학적 거리가 가로놓여 있는 연유이다.

이로 말미암아 국민들은 이준석 본인조차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이준석 어깨 위에 얹어진 본질적 시대정신을 주목하는데, 저들 여의도 사람들은 이준석이 누구 밑에서 인턴을 했다는 따위의 비루하고 지엽말단적인 계보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현실 정치권을 강타한 이준석 돌풍에 내포된 한 가지 중차대한 역사적 의의는 거대한 시대정신의 맥락과 의미에는 철두철미 눈감은 채 국민들은 실제로는 전혀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자잘한 계파나 지질하게 따지는 여의도 사람들에게, 강용석 일행한테나 어울릴 법한 천박한 음모론이나 한심하게 입에 주워 담는 여의도 사람들에게 이참에 여의도를 벗어나 땀 흘려 성실하게 노동하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단 하루라도 해보라고 촉구하는 민심의 준엄한 명령에 있다. 이준석 현상에는 여의도 사람들 전체의 즉각적 하방을 요구하는 강력한 여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논리는 이준석에게는 구체적 내용(Contents)이 없다는 아우성이다. 여의도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는 축에서는 미래비전을 빨리 제시하라며 이준석을 집요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여의도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부류에 속한다는 정치인과 언론인과 시사평론가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이준석을 향해 어서 내놓으라며 마구 윽박지르는 미래비전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소득의 절반을 국가에서 세금으로 뚝딱 떼어가는 북유럽식의 복지국가가 그들의 미래비전인가? 대영제국을 히틀러의 마수에서 구출해낸 구국의 영웅 처칠에게마저 여성 차별주의자라는 빨간 페인트를 무차별적으로 뿌려대는 전투적 페미니즘이 그들의 미래비전인가? 권력자들과 세도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와 표현들을 인터넷 검색도 되지 않게끔 금칙어로 걸핏하면 지정하는 중국의 질식할 것 같은 지독한 통제체제를 한반도 남쪽에 이식하는 게 그들의 미래비전인가? 아니면, 나이가 벼슬이 되는 전근대적인 장유유서 전통의 부활이 그들이 말하는 미래비전인가?

남에게 미래비전을 바라려면 내가 먼저 나의 미래비전을 공개해야만 한다. 이준석으로부터 미래비전을 쥐어짜려는 각계각층의 유수한 인사들의 공통분모는 정작 스스로의 미래비전이 뭔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점이다.

세대교체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정권교체

강준만은 변화의 풍향계 역할을 해온 논객이었다. (JTBC 뉴스화면 갈무리)

작금의 꼰대민국 대한민국에서는, 구태조선 남조선에서는 단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는 이유와 인연과 배경만으로 능력과 도덕성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장관이 되고 차관이 된다. 공기업 사장과 정부산하기관의 간부가 된다. 국회의원이 되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된다.

북극점에서는 어디로 향하건 남쪽으로 가는 셈이 된다고 한다. 남쪽이 어느 쪽인지 굳이 찾아 헤맬 필요 없이 현재의 위치에서 그냥 한 발만 떼어도 남쪽으로 저절로 갈 수 있다. 1980년대에 대학은커녕 초등학교에도 아직 입학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확고하고 선명한 미래비전으로 자리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방과 명예교수는 1997년 12월의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교체가 최고의 개혁이다”라는 사자후를 토한 바 있다. 박정희가 창당한 공화당을 모태로 삼은 정당들이 30년 넘게 나라의 권력을 독점해온 상황에서 강준만의 절규 섞인 외침은 진선진미한 진리였다. 당시에는 촉망받는 소장파 학자이자 개혁파 논객이었던 강준만은 최근 현역에서 은퇴해 교단에서 물러났다.

한국은 586 세대가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주요 부문의 실권과 주도권을 지난 30년 가까이 학생운동권 용어를 빌리자면 “전일적으로” 지배‧장악해왔다. 군사독재에 버금갈 세대독재가 너무나 오랫동안 자행되어온 것이다. 따라서 1997년 12월에 정권교체가 최대의 개혁이었다면, 2021년 6월에는 세대교체가 최고의 개혁이 아니래야 아닐 수가 없다.

소장파 학자 시절의 강준만은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세월이 흘러 원로학자의 반열에 진입한 강준만의 옛 명제는 이제는 “세대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더 늦기 전에 업그레이드돼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