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본관의 저주

이준석이 36년을 사는 동안 나경원과 주호영은 둘이 합해 36년을 국회의원을 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나경원 전 의원과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처지가 이만저만 옹색한 게 아니다. 나경원은 4선의 전직 의원이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5선의 현직 의원이다. 합이 9선이면 국회의원 노릇을 무려 36년을 했다는 소리와 진배없다. 둘을 합치면 국회의사당 구력이 36년에 달하는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두 중진 거물 정치인이 이제 겨우 만으로 36세에 불과한, 더욱이 국회 경내의 건물들에 여태껏 주로 방문자 출입증 끊고서 뒷문으로 조용히 드나들었을 이준석 후보에게 당대표 선출 경선에서 크게 고전하고 있다.

나경원과 주호영이 이준석을 상대로 시쳇말로 탈탈 털리고 있는 데에는 여의도 정치권이 한국사회 최고의 인재가 집결하고 최고급 정보가 유통되는 공간이 더 이상 아니란 냉정한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은 하등동물인 파충류에 지나지 않을 장수거북이 아무리 장수한들 지혜와 경험이 쌓이지 않는 것처럼, 연봉 2억짜리 고소득 직종이라는 그럴싸한 허우대만이 달랑 남은 국회의원을 오래했다고 해서 세계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과 국민을 위한 비범한 책임감이 생기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강남에서 집을 사면 돈이 굳는다. 여의도에서 배지를 달면 머리가 굳는다. 현재의 다선 국회의원은 남들과 견주어 머리가 더 심하게 굳은 인간을 가리킬 따름이다. 따라서 4선이면 16년간 머리가 굳어왔다는 뜻이고, 5선이면 20년 동안 머리가 돌덩이가 돼왔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준석의 상승세를 꺾을 특단의 대책이랍시고 고작 착안해낸 게 나경원은 구태의연한 계파싸움에 불을 지피는 일이요, 주호영은 시대착오적 음모론을 제기하는 짓이었다.

지금은 추미애와 조국 남매가 윤석열의 밤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고, 박영선과 김어준 남매가 오세훈의 밤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며, 나경원과 주호영 오누이가 이준석의 밤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 되는 “남한정치 밤의 3부작”이 바야흐로 완결되려는 순간이다. 이 웅대하면서도 역설적인 밤의 3부작 가운데 한반도 남쪽에 단연 거대한 변혁의 물결을 몰고 올 시리즈는 나경원과 주호영이 한물간 악역을 맡고, 이준석이 외롭고 의로운 젊은 주인공으로 얼떨결에 등장하는 마지막 3편이다.

조국과 추미애 두 전직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협력해서는 안 되는 몸이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에게 오세훈 서울시장은 손잡고 싶어도 손을 잡을 수 없는 관계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경원과 주호영에게는 이준석 돌풍에 숟가락을 얹고 올라탈 기회가 차고도 넘쳤다. 그러므로 필자가 이준석의 거침없는 맹진으로 말미암아 수세에 직면한 나경원과 주호영의 입장이었다면 이렇게 명쾌하게 선언했을 것이다.

“이준석 후보는 우리 당의 귀하고 빛나는 보배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인재입니다. 제가 당대표에 당선되면 만 40세가 되어야만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부여되는 현행 헌법조항을 어떻게든 신속하게 뜯어고쳐 이준석 후보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의 후보자로 나설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다.”

여의도에서 다선 의원이라고 거들먹거리며 머리가, 아니 대가리가 설악산의 기암괴석들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성 정치인들은 무슨 황당무계한 백일몽이냐며 필자를 나무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대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수도 서울의 민선시장이 불미스러운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고 그 누가 예견이나 했겠는가? 상계동에 거주하는 우리나이로 서른일곱 살짜리 미혼남이 70년 한국 현대사 중 55년 넘게 정권을 잡아온 국회의석 100개가 넘는 주요 정당의 당수로 뽑힐 현실이 코앞에 다가오리라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준석의 치명적 약점은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의원회관이나 식당, 또는 찻집에 끼리끼리 모여앉아 계파와 출신을 따질 때 이준석은 혼자 인터넷 게임에 열중했다. (이미지는 필자의 페친이 제공함)

보는 만큼 보이고, 바라는 만큼 이뤄진다. 자전거 타고서 빨리 페달을 밟으면 20분이면 너끈히 여유 있게 일주할 수 있는 좁디좁은 여의도 바닥에 수십 년간 갇혀 있으면 보이는 건 비루한 정치공학뿐이요, 바라는 것이라곤 구질구질하게 금배지 한 번 더 다는 게 전부다. 이러한 관행과 문법에 무비판적으로 맹종해온 586 세대 중심의 기성세대 수천 명이 낮에는 의원회관에, 밤에는 의사당 주변의 술집과 찻집과 음식점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허구한 날 하릴없이 출신 따지고, 한심하게 족보 캐묻는 곳이 남조선의 기성 정치권이다.

그렇다면 이준석의 최대 취약점은 뭐냐? 비록 인턴생활일지언정 여의도밥을 먹었다는 거다. 국민에게는 쥐약이요, 여의도의 기득권자들에겐 보약인 문제 많은 여의도밥을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 밑에서 잠깐이나마 먹어봤다는 이력 때문에 이준석은 국민의힘 안팎에 서식하는 각종 철밥통 족속들로부터 억울하게 몰매를 맞고 있다. 허나 유권자들은 알고 있다. 한국정치의 진짜 암적 존재는 인턴밥이 아니라 비서관밥을, 보좌관밥을, 의원밥을 먹은 자들이란 걸.

그럼에도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면 밥줄이 끊길까 봐, 철밥통을 잃을까 봐, 기득권을 놓칠까 봐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날밤을 지새우며 전전긍긍하는 “직업이 경륜인 사람들”에게 이준석 신드롬을 제압할 기상천외한 한 가지 방법을 필자가 통 크게 무료로 공개하도록 하겠다.

이준석이 유승민의 데릴사위라는 가짜뉴스를 주식회사 가로세로연구소를 위시한 온갖 잡스러운 극우철밥통 유튜브 방송을 총동원해 부지런히 퍼뜨려라. 그러면 이준석은 그의 핵심 지지기반인 청년세대 사이에서 ‘국민도둑놈’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그게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의 정치적 스승이자 태극기부대의 정신적 지주인 저 악명 높은 전광훈 목사 같이 이준석을 주사파 2중대라고 음해하는 것보다는 덜 좀스럽고 민망한 행동일 터이다.

이준석 현상은 기존 여의도 정치의 가치와 효용을 더는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평범한 인민대중의 정서와 지향을 대변하고 반영한다. 국회의원 여러 번 한 게 관록이 되고 경쟁력이 되는 세상은 끝나도 이미 한참 전에 끝난 터이다. 금배지 오래 단 것을 벼슬로 믿어온 낡은 인물들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계기로 일제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국민의힘 전체가 집에 가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