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의 준비된 분노
“노조건 기업이건 구시대적 인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고,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예전 방식으로만 하는 사람들이 동료 시민들한테 정말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거죠. 빨리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연 전 의원이 올해 초봄에 발간된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도서출판 오픈하우스 펴냄)」의 결론 부분에서 피력한 의견이다. 우석훈 성결대학교 교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리고 김세연 국민의힘 전 의원 세 사람이 대담자로 참여한 이 책에서 김 전 의원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책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런데 그가 국민의힘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원장으로 근무하며 겪었던 소회를 털어놓는 대목에 이르자 김 전 의원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면서 구시대 인물들은 빨리 집에 가라는 독설을 거침없이 쏟아냈던 것이다. 책의 정리자 역할을 맡아 대담진행 현장에 배석했던 필자는 김세연 전 의원의 느닷없는 격앙된 반응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세연의 돌연한 분노는 결과적으로 이후에 벌어질 사태를 정확히 예측한 준비된 분노로 판명되었다. 구시대적 인식에 갇힌 탓에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예전의 낡은 방식만 고집하다가 동료 시민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연달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신호탄은 서병수 의원이 쏘아 올렸다.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중앙선관위에서 받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선증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틀렸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늘어놓음으로써 “친박은 역시나 구제불능”이라는 사실만 국민들에게 다시금 명확히 환기시켰다.
서병수 의원은 윤장현 전 광주시장과 더불어 최악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분류되어도 손색이 없을 인물이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가 부활된 이래 부산시장 선거에서 최초로 낙선한 보수정당 후보자로 기록되는 부끄러운 족적을 남겼다. 작년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운 좋게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정치인 서병수가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수도권에 거주하는 평균적인 중도층 유권자인 필자는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봐도 도무지 기억하지를 못하겠다. 서병수 의원은 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도 진즉에 집에 갔어야 옳았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고, 서병수 의원이 민심의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서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외치기 무섭게 김용판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저격에 나섰다.
김용판 의원 개인으로서는 윤 전 총장을 향해 맺히고 쌓인 감정이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김용판이 막대기를 꽂아놔도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뽑아주는 대구경북 지역의 경계선만 벗어나면 더불어민주당의 황운하 의원과 50보 100보인 인사로 평가된다는 데 있다. 검찰 수장 출신의 윤석열이 살아 있는 권력에 소신 있게 맞서서 국민들 사이에서 단숨에 인기와 지지가 치솟은 것과는 판이하게, 경찰조직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김용판과 황운하 모두 소속정당만 다를 뿐 집권세력에 영합해 출세하고 성공한 그 나물에 그 밥인 기회주의적 인물로 간주되는 것이다. 김용판 의원이 그의 옛 직장동료인 황운하 의원과 나란히 사이좋게 손잡고 하루빨리 집에 가야만 하는 까닭이다.
황교안이 할 일은 방미가 아닌 귀가
집에 가는 게 외려 도와주는 것인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프로야구 김성근 전 감독이 왕년에 수시로 구사했던 출첵야구 수준이 될 게다. 조금 과장 보태면 지면이 모자랄 판국이다. 따라서 집에 가야 바람직할 사람들의 끝판왕에 해당할 인물을 호출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해보겠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뜬금없이 미국을 다녀왔다. 그가 밝힌 주요한 방미 명분은 한미동맹 복원이다. 작금의 미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심각한 경제난이라는, 국가의 사활과 존립을 좌우할 양대 난제와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대외관계는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긴급한 국제적 현안이 있다면 중국과의 첨단기술 경쟁과 중동 지역에서의 미군 철수 정도이다. 한반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게는 화급한 발등의 불이 아니다.
더욱이 미국 조야는 대외관계에 임할 때 계산속이 아주 철저하다. 총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당수직을 사퇴한 한국의 전직 야당대표를, 그것도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아예 지지율조차 잡히지 않는 가망 없는 한물간 인물을 성의 있게 상대해줄 미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나 외교 관료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러므로 황교안 전 총리가 감행한 이번 미국행의 진짜 목적이 한미동맹 복원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 회복이었음은 굳이 입 아프게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정치인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는 건 아주 잔인한 주문일 수가 있다. 그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다. 황교안이 여의도 정치권의 전면에 또다시 나타나면 쌍수 들고 환영할 사람이 더불어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을 바라는 국민들 중에 더 많겠는가? 아니면,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들 가운데 더 많겠는가? 답은 황교안 스스로가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게다.
만약에 황교안 전 총리가 나라와 국민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면 그가 응당 가야만 할 곳은 미국이 아니라 집이었다. 본인 혼자만 집으로 가면 충분할 서병수 의원이나 김용판 의원과 다르게 황 전 총리는 최측근인 민경욱 전 의원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이참에 확실히 마무리해야만 마땅하다. 민 전 의원이 소위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한답시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끊임없이 차례로 배회하며 야당을 완전히 희화화시켰기 때문이다. 21대 총선 당시 꼼수까지 동원해가며 민경욱에게 무리하게 공천장을 챙겨준 원죄가 있는 황교안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민 전 의원을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하는 배경이다.
세상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바꾸기 마련이다. 현재는 국민들의 뇌리에 구태의 화신으로 각인된 민주당 586 세대 정치인들도 한때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더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과거에 잠깐 용기 있었음을 부당하고 불법적인 특권을 대를 이어 만끽하는 ‘내로남불의 백지수표’로 악용하려다가 민심의 원성과 공분을 자초하고 말았다.
국민의힘에도 더불어민주당 586 못잖게 자기들의 기득권에 악착같이 집착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필자는 그들을 ‘보수의 586’으로 개념규정하고 싶다. 이 보수의 586들은 가질 만큼 가졌고, 누릴 만큼 누렸다. 국민들은 보수의 586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한 가지 작은 용기만 발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용기란 바로 이제 그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용기이다. 부탁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당신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더 늦기 전에 제발 돌아가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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