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도시’ 수원시는 근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인문기행 코스 4개를 개발했다. 오랜 공을 들여 하나의 코스를 개발하고 스토리를 담는 작업으로 총 4년의 시간에 걸쳐 완성됐다.
그 첫 번째 코스는 100년 전 조선 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새로운 문물의 유입이 활발하던 신작로에 초점이 맞춰진다. 교동을 중심으로 근대의 입구를 통과하던 수원사람들과 당시 수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신작로, 근대를 걷다’라는 제목의 인문기행 코스는 화성행궁광장을 출발해 공방거리를 지나 팔달사, 대한성공회 수원교회, 수원 구 부국원, 구 수원시청사, 구 수원문화원, 수원향교, 수원시민회관, 매산초등학교, 인쇄소 골목을 거쳐 수원역과 인근에 남아 있는 급수탑에서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총 3.9㎞의 코스를 둘러보는데 2시간 30분 가량이 걸린다. 곳곳의 근대건축물과 그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며 스토리를 곱씹으면 더 풍성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공방거리~수원 구 부국원
행궁광장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형성된 공방거리는 ‘수원의 인사동’처럼 작고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열었던 중심지였던 이곳은 보도블록이나 배수로도 일반적인 길과는 다르다. 수원화성의 독특한 구조물을 검은 돌에 새긴 건물 장식도 특별하다.
공방거리 중간쯤 만날 수 있는 ‘한데우물’은 정조대왕이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할 때 물을 길어 사용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에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됐던 우물은 2008년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복원됐고, 현재 ‘도심 속 우물’이라는 독특한 볼거리로 존재한다.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주 배경인 집도 한데우물 맞은편 골목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공방거리를 빠져나온 뒤 남문로데오거리를 걷다 보면 빌딩들 사이에 다소 생경한 한옥 건축물이 나타난다. 전통사찰인 ‘팔달사’다. 용화전 측면에 ‘담배 피우는 호랑이와 시중드는 토끼 두 마리’가 해학적인 벽화로 남은 곳이다. 또 방문객을 위한 쉼터 덕분에 도시의 소음을 뒤로 하고 한가로이 쉬어가기에도 좋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대한성공회 수원교회를 만날 수 있다. 1905년 수원지역에서 시작된 성공회는 브라이들(Bridle, 부재열) 신부가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아 1908년 설립한 ‘성스데반성당’이다. 팔달산 비탈에 붉은 벽돌의 독특한 외관을 지닌 성당은 국채보상운동과 학교, 고아원, 수녀원 운영 등 서울 이남에서 성공회의 활약을 주도한 곳이다.
◇수원 구 부국원~수원시민회관
향교로 입구부터는 수원의 근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시작점은 ‘구 부국원’이다. 독특한 모양의 이 건물은 1923년 일본의 주식회사 부국원이 종자와 종묘 등을 판매하기 위한 본거지로, 당시 교동에서 가장 높은 이질적인 건물이었다. 권업모범장과 함께 일제의 농업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해방 후에는 관공서, 병원, 인쇄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며 세월의 풍파를 보여주는 다양한 흔적도 남았다. 구 부국원 건물은 2015년 철거의 위기에 처했으나 수원시가 매입해 근대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일제의 침략성을 알리고 다양한 교육과 전시 등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수인선:협궤열차의 기억’ 전시회가 열려 수인선의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구 부국원에서 향교로를 따라 수원역 방향으로 내려가면 보이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은 ‘구 수원시청사’다. 수직성과 수평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은 1956년 7월 26일 준공돼 수원시청사로 사용되다가 수원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1987년부터 권선구청으로, 2007년 9월 이후부터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당 모퉁이에 있는 3층짜리 아담한 벽돌 건물은 1920년 말에서 193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금융지주회사였던 조선중앙무진회사 사옥으로 시작해 한국 전쟁 이후 수원시청 별관 등 다양한 용도로 바뀌다가 1980년대부터 1999년까지 수원문화원이 사용해 ‘구 수원문화원’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향교로라는 이름의 주인 격인 ‘수원 향교’는 1789년 현재의 터에 자리를 잡은 수원지방 인재 교육의 산실이었다. 붉은색 홍살문과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을 새긴 하마비가 조선시대로 초대한다. 수원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인과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과 인재 양성 공간인 명륜당으로 구성돼 있다. 더불어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제남시가 수원시와의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2003년 수원시에 기증한 공자상도 볼 수 있다. 특히 대성전은 경기도 내 향교 대성전 중 가장 큰 규모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보물로 지정됐다.
수원 향교에서 팔달산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가면 ‘수원시민회관’이 나온다. 1971년 건립돼 비교적 젊은 건축물이다. 건물 양쪽에 부조와 모자이크 작품이 걸린 이곳에서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펼쳐졌다. 옥상에 올라서면 수원시 구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어 파노라마처럼 풍광이 펼쳐진다.
◇매산초등학교~수원역 급수탑
수원문화원에서 내려오면 기와지붕을 얹은 ‘매산초등학교’가 나온다. 1900년대 일어를 가르치던 일어화성학교가 일본인 소학교로 바뀌며 수원거류민립소학교가 됐고, 지금의 매산초 자리로 이전해 수원공립국민학교까지 수차례 이름이 변경됐으나 일본 패망과 함께 폐교됐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1945년 매산국민학교로 다시 태어난 수원 초등교육의 살아있는 역사다.
향교로 일대는 인쇄산업의 중심지였다. 1918년 일본인들이 설립한 수원인쇄주식회사를 시작으로 1920년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쇄소도 등장했다. 서적 수요가 늘어나며 활황을 누리던 인쇄소 골목은 1970~1980년대 수원시내 인쇄소의 절반가량이 모여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인쇄소 간판이 즐비한 골목을 따라 끝까지 가면 ‘수원역’이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표로 철도를 만들면서 애초 예정 노선은 지지대고개와 화서문 외곽, 팔달산 기슭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원사람들의 끈질긴 반대로 지금의 노선으로 확정돼 1905년 1월 1일 개통했다. 일본의 약탈과 침략 목적으로 철도는 이용됐지만, 해방 후에도 수원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일반 철도와 고속철도, 지하철 1호선, 분당선, 수인선 등 많은 열차가 정차하며 유동 인구가 40만 명에 달하는 활기 넘치는 곳이다.
특히 수원역 광장에서 병점 방향으로 300여m 거리에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급수탑은 국내에서 유일한 ‘협궤선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이며, 시멘트로 만들어진 급수탑은 광궤철도 급수탑이다. 수인선과 수여선이 지나는 곳으로, 소금과 쌀을 수탈하던 일제의 운영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다. 2015년 수원시가 급수탑 주변에 녹지를 조성해 공원화했으며, 동일한 부지 내 현존하는 희귀한 철도 유산이라는 특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신작로, 근대를 걷다’를 비롯해 4개 인문기행 코스는 순회전시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4월24일부터 5월14일까지 광교홍재도서관 1층 로비에서, 5월15일부터 6월4일까지 경기남부경찰청 본관 3층 로비에서 권역별 문화자원과 공간을 소개하는 전시가 진행된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의 근대를 품은 건축물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긴 스토리를 따라 만들어진 인문기행 코스는 인문·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에게 흥미로운 볼거리와 지식을 알려줄 것”이라며 “다양한 코스가 소개되는 만큼 수원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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