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다.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이다.” (담론, 25장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 중)

신영복 선생은 ‘햇볕’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부’는 그분이 살아가는 이유였다. ‘공부’의 시작은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들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 곧 ‘깨달음’이었다. 깨져야(깨다) 시작할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다(알음). 그다음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분에게 ‘중심’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이지만, ‘변방’은 창조와 혁신의 공간이었다. ‘하방연대’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방법론이었다. ‘존재’는 이제 ‘관계’로 나아가야 했다. 관계를 통해 인식하고, 관계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바꾸어가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