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싱아를 먹었을 때처럼 입에 침이 고이며 신맛이 도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첫’이라던가,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지만 ‘사랑’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첫’과 ‘사랑’이 하나가 되면 왠지 이 나이에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지거나 두리번대며 누가 보는 사람 없나 눈치를 보는 마음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은 비단 나만의 현상일까. 하지만 내게 그런 ‘첫사랑’의 추억을 물어오면 쉽게 그런 감정에 휘말린 사건 같은 건 없을 것 같다가도 살그머니 가슴 저편에서 아니야 있어 하며 화롯불의 불씨 살아나듯 일어나는 것이 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쪼그만 여자애가 전학을 왔다며 우리 반에 들어왔다. 이름이 무슨 종희였는데 나중에 우린 ‘종이’라 부르며 놀렸다. 그때 우리 또래의 가시나들 같지 않게 짧은 치마에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의 아주 조그마한 여자애였다. 우리 학교로 전근 오신 선생님의 딸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못 볼 것을 본 아이처럼 콱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씽긋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는 3학년짜리 내 가슴에 살아있는 인형처럼 와서 폭 안겨 버렸다.

아니 나 혼자서만 가슴에 안았다. 그러나 정작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말을 걸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날 그런 감정의 순간 이후에 특별히 남아있는 기억은 없다. 그러니 그걸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성을 향해 느껴보던 첫 감정이었다는 것에서 감히 첫사랑의 감정 운운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