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아픔을 객관화하고 분석하려 애쓰면서 살아왔다. 동정은 선량한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감정이라고, 과도한 선행은 천국 갈 수 있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욕심처럼 쌓아두는 돈다발 같은 것이라고. 내가 열심히 살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에너지를 내뿜음으로써 나 나름의 선행을 세상에 건네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분이야 어쩌겠냐만은, 남아있는 친구의 마음이 어른거려 가슴이 옥죄어 온다.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손을 잡고 방방 뛰며 놀고 있는 아이 얼굴이 흐릿하다. 이런 건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나. 텔레비전을 켜 주고 부엌으로 도망쳐버렸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른의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는 하늘나라에 가기만 하면 천사들과 뛰놀며 아프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것도 이곳에서 열심히 바르게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란다,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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