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문제가 젠더 갈등 한복판에 등장했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그 시작이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에게 "남성도 여기(낙태죄)에 대해 심각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문제"라며, "20~30대 남성들이 이 법안(낙태죄 전면 폐지)을 바라보는 평가,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인식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김 의원이 품은 뜻을 의심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현 낙태죄에서 남성들의 책임은 완전히 배제돼 있고, 개정안이 통과돼 폐지되더라도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 성별을 구분해서 의견을 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공적 자리에서 성을 기준으로 나눈 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렇게 낙태죄는 젠더 이슈가 됐다.
더 중요한 논쟁은 그다음부터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공청회 직후 논평을 내고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들의 반대의견은 잘 알겠으나 남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등 어이없는 말들을 일삼고 여성들의 삶을 짓밟았던 공청회에서의 망언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다음날인 9일 브리핑을 통해 김남국 의원이 8일 저녁 조 대변인에게 직접 연락해 통화로 전날 논평에 대해 항의했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난데없이 일면식도 없는 타 당 대변인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왜곡된 브리핑이라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상식적인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대변인도 입장문을 내고 “문제의 핵심은 거대 여당 의원이 타 당 대변인에게 협박성 전화를 했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나이 어린 여성’이자 ‘소수정당의 원외 대변인’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 의원은 10일 오전 페이스북에서 “정의당이 ‘30대 어린 여성 대변인’을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며, “그 무서운 논리라면 저는 ‘남성’이니까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남성 혐오’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했다.
난데없이 ‘남성 혐오’를 꺼낸 것도 의문이지만, ‘여성’, ‘어린’을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 부분에서 더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김 의원은 ‘여성한테는 항의 전화 못 하나’라고 말했다. 반대로 일면식도 없는 60대 남성 대변인 어르신께도 전화해 몰아붙일 수 있었을지 되묻고 싶다.
김 의원은 “남성도 공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흔히 남성들이 자신의 입장을 부각해서 성차별적 현실을 호도하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다. 대한민국 여당의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이자, 남성인 그가 느끼는 공포감과 상대방이 느끼는 그것이 같을 수 있는지 또 한번 묻는다.
조 대변인이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이로 인해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다. 거대한 권력을 가진 김 의원에게 여성들의 피해 의식과 분노, 두려움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그 무감각함을 그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성’, 더 나아가 ‘어린 여성’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부조리와 무례를 감당하고 있다. 남성들이 해야할 일은 여성들이 왜 그렇게 느끼고 말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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