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김상봉 기자]조사단장 홍순석 교수가 공개한 관련 문헌기록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1929)’, ‘장흥지속록長興誌續錄(1939)’, ‘장흥지長興誌(1966)’3건인데, 문헌에는「斯」자가「於」로, 「多」자가「之」, 「而」로 기록되어 있다.

장흥의 유학자 위원량이 경술국치의 사실을 듣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칠언절구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칠언절구를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