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저는 사건 당시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 회사가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해주고 공감해주는 분위기였더라면 저는 그토록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서 홀로 남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던 중 직장 상사로부터 성희롱과 성폭력(강간미수)를 당했다는 피해자 A씨의 입장문 중 일부다. A씨는 현재 회사와 성폭력 사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A씨가 현재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거대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직장 내에서 발생한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를 본 직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인사이동과 업무배제 등을 겪었다. 피해자가 업무환경에서도 2차 피해를 겪는 셈이다.
A씨의 성토에 대한항공은 ‘피해자와 협의해 사건을 해결했다’고 짧게 답했다. 피해자의 입장문과 대비되는 짧고 명료한 답변이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경험자의 81.6%가 성희롱 피해에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간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31.8%였고, ‘소문·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는 응답이 12.7%로 조사됐다.
성희롱 피해자 대다수가 사태 해결보다 2차 피해를 두려워해 침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피해자들을 침묵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기업 내에서 발생한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피해자를 보호해주거나, 사건이 제대로 해결된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희롱 행위자와 피해자 재직 현황을 보면, ‘행위자만 재직하고 피해자는 퇴사한 경우’ 15.5%였고, ‘피해자만 재직하고 행위자가 퇴사한 경우’ 19.5%, ‘둘 다 계속 재직하는 경우’가 62.7%로 가장 많았다.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해도 양측은 여전히 한 건물에서 업무를 나누며 마주쳐야 한다.
직장 내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이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가 필수 과제다. 실태조사 후 이 사례에 발생한 원인 분석과 피해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직장 내 성범죄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말 못하는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묵인하고, 방치할 수 없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으로 상대하는 것이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가 해결될 수 있는 첫 걸음이다.